이 작품은 현종 8년(1667)에 현종이 인정전에 올라 이순(李焞, 숙종)을 왕세자로 책봉하면서 내린 글을 기록하고 있다. 교명은 왕비·왕세자·왕세자빈·왕세제·왕세제빈·왕세손을 책봉(冊封)할 때 왕이 내리는 문서이다. 교명은 책봉 의례의 핵심 의물의 하나로서, 책봉의 위엄을 현시하고자 제작된 것이다. 초기에는 교지와 같은 짧막한 내용에서 출발하였으나 이후 격식을 갖추어 왕실의 권위를 드높이는 핵심 의물로 등장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문서들 중 가장 화려한 형태를 띤 문서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화려함이 왕실의 권위와 연관되어 있는 것은 물론 왕의 권력을 재생산하는 문화적 기제였다는 점에서 조선의 왕실을 상징적으로 장식한다.
王若曰. 元良以正, 戴記徵早喩之文, 宗廟攸尊, 漢史傳豫建之議. 此三代長治之道, 亦
列聖共由之謨. 聿遵彝章, 載揚冊命. 咨爾元子焞! 姿表秀異, 氣質淸明. 愛敬自篤於宮闈, 藹乎天稟, 英睿寔著於孩抱, 儼然日將. 勝衣拜趨, 能習禮節, 置官輔養, 已通《孝經》.奚
但撫背之予私? 實係延頸之民望. 粤自前歲, 群情久切於立儲, 迨玆令辰, 縟典宜擧於主鬯.爰正貳極之位, 以托萬歲之基, 玆命爾爲王世子, 爾其在今沖年, 立其大志.
道義爲主, 自絶非僻之萌, 學問無他, 先明性理之蘊.旣離阿保之手, 惟務親賢, 不失赤子之心, 益勉成德。 習與智長, 仁以孝彰。 方策俱存, 師行文王世子, 聖域可至, 必曰
大舜何人. 體父母期望之誠, 夙夜無怠, 念祖宗艱大之業, 終始罔愆.
현종개수실록 16권, 현종 8년 1월 21일 丙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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